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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Bravo, my life! 스물 아홉 번째 만남 오한숙희
okmas  2005-08-16 08:51:57, 조회 : 4,920, 추천 :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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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공보 2005.07.25    |    조회 91
Bravo, my life! 스물 아홉 번째 만남 오한숙희


오한숙희와 속풀이 수다한판

오한숙희를 만나면 수다가 행복해진다. 굴러가는 말똥만 봐도 웃을 나이는 지났는데 그녀와 함께 있자니 웃다가 숨 가쁘고 가슴 답답할 때 마신 사이다 한 잔처럼 속이 뻥 뚫린다. 바로 이 시대의 가장 대중적인 여성학자로 알려져있는 오한숙희와의 만남은 그랬다.
굼벵이에게도 구르는 재주가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한가지 재주는 타고난다는데 이왕이면 그녀처럼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재주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뻔 했다. 장단과 호오가 살아있어 아주 호쾌한 수다한판 기대해도 좋다.

대한민국 종합 이야기꾼

오한숙희와의 인터뷰는 영등포 구민회관에서 강연을 마치고 근처 ‘하자 작업장학교’내 작은 까페에서 이루어졌다. ‘하자 작업장학교’는 큰 딸 희록이가 다니는 대안학교.

잠시 휴학 중인 딸 덕분에 꽤 오랜만에 들린 모양이다. 까페주인을 시작으로 희록이 친구, 선생님, 인턴… 마치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는 참새처럼 그녀의 인사는 인터뷰 중간에도 계속 됐다.

“어머, ○○구나~ ○○야 안녕! 몰라봤어~ 8월 3일 저녁에 희록이 검정고시 끝나고 같이 저녁 먹을 수 있니?

다음 학기 준비를 위해서 같이 얘기를 한번 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애”, “오늘 내 강의를 들은 어떤 분이 거기 애들이 맨날 두드리고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해서, 게네들이 왜 그러냐면요~ 쭉 설명하고 앞으로 많이 귀여워해달라고 얘기 했어요”

이렇게 불쑥불쑥 치고 나가는 대화에 인터뷰는 중간중간 일시정지와 재생을 반복해야 했지만, 이런 평소 모습도 모른 채 갇힌 공간에서 만났더라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었을까.
그래서 일단 그녀를 수다쟁이라고 칭하려 한다. 왜냐면 스스로 수다쟁이라고 말하니까. 그리고 세상은 그녀의 수다를 원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학자라는 근사한 타이틀도 있는데 수다쟁이는 너무 한 거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바로 남자가 하면 대화, 여자가 하면 수다가 돼버리는 선입견 때문에 그동안 수다는 그저 할일 없는 여자들이 남의 흉이나 보는 푼수거리로 무시당해왔다. 그런데 거기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이가 바로 여성학자 오한숙희였으니, 그녀는 11년 전 「그래, 수다로 풀자」(개정판. 웅진 지식하우스) 출간을 통해 수다에 대한 탐구를 세상에 내놨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수다를 사회학적, 여성학적으로 재해석하여 수다의 지위를 격상시켜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대한민국 종합 이야기꾼이 되었다.

“여성학자로 제일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성학자, 교수, 방송인… 한가지로 하려면 종합예술가 이런 것처럼 종합이야기꾼 정도가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사람들이 만담가인줄 알아요, 또. 하하하”

그렇게 그녀는 유쾌하다. 말하는 맛을 알고 즐길 줄도 알아서 말에 베인 리듬과 농도를 적절히 조절하여 심각한 문제도 가볍게 띄울 줄 알고, 어려운 얘기도 쉽게 해서 좋다. 한마디로 말을 참 잘하는데, 그런데 알고보니 어려서부터 시작된 수다의 역사가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그냥 말하고 싶은 대로 놔두셨어요. 워낙 착하셔서…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가 다 참으면서, 니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 그러셨던 거죠”
바로 감칠맛나는 그녀의 입담 뒤엔 부모님이 든든한 후원자였던 것. 1959년 인천에서 3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난 오한숙희에게 세무공무원인 아버지는 늘 동화 구연을 부탁했고, 어머니는 쫑알쫑알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다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막내딸의 이야기를 내내 듣고 있다가 틀린 말은 고쳐주고 표현을 바로 잡아주곤 했다.

스스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말대답의 여왕’, ‘따지기쟁이’, ‘토커티브 걸’이라고 고백할 정도인데, ‘항상 귀엽게 봐줄 준비가 되어있는 따뜻한 시선이 있었던 것은 억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교육환경이었다’고 회자할만큼 그녀의 부모님은 딸에게도 당당하게 말할 권리를 가르쳤던 것이다.

숙희네 네 여자 이야기

그런데 바로 그게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 뒤에도 어렵게 아르바이트하면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대 영문과에 입학, 과외로 학비를 벌어가면서 중간에 전과하여 사회학과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던 강단을 키워준 건 아닐까.

그래서 두 딸에게도 “18살까지만 책임지고 나머지는 지들이 벌어서 살아야하고, 대학에 안갈 수도 있지만 간다면 벌어서 다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사교육에 억척스러운 요즘 엄마들을 생각하면 과감한 양육방식인데, 사실 그런 면에서 희록이도 만만찮다.

“희록이가 이번 학기 휴학하고 동생을 한 반년동안 돌봤어요. 동생 등하교도 챙기고… 이번에 ‘하자 학교’ 목표도 돌봄이래요.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니까 남한테 피해안주고 나만 잘 살면 되지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거죠”

아무리 엄마가 대학 필수론자는 아니라도 자신의 진로를 당당히 대안학교로 선택하고, 휴학하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겠다는 결정도 쉽지 않을텐데, 어른들까지 자신의 지원군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몇 년전인가 고등학교 시절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에 견디다 못해 그만두겠다는 막내 딸 결정에 부모님은 그것을 받아들여 서울로 이사를 했었던 것을 보면 모계 3대가 빼다 박은 것 같다. 

그렇게 엄마를 닮아 호기좋게 자란 희록이는 벌써 고2가 되었고, 작은 딸 희령이도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이혼 후에 김포에 터를 잡은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이젠 김포 지역 주부들과의 정기적인 수다모임도 독립궤도로 떠나보내고, 기자다 후배다 해서 끊임없이 들락거리던 손님들도 거의 들이지 않는단다. 바로 발달장애가 있는 작은 딸 희령이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설명.

“육아노동에 전념하겠다고 소문을 쫙 내놨기 때문에 방송도 이제 안해요. 여성시대에서 ‘남자는 왜’라는 코너 하나만 하고 있고, 강의도 2학기부터 성공회대에서 ‘사랑 결혼 그리고 성’이라는 주제로 하나 맡았어요. 근데 내가 3년 군대 갔다 치라니까 요즘 군대 개월수 줄었다 그러대~ 하하”

그렇게 그는 흔히 식구 중에 장애가 있으면 ‘딱해서 어쩌나~’ 동정도 위로도 아닌 시선에 뭐라고 딱히 응대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인지 일부러 대수롭지 않게 얘기해야 상대도 어렵지 않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까지 계산하는 듯하다.

“난 우리 희령이랑 노는게 너무 즐거워요. 오늘도 책을 보는데 2페이지 보고, 이쁜 척하면서 무릎에 기대고 그러길래 집중! 집중! 그러면서 애가 기분 나빠 할까바 ‘있잖아~’ 이쁜 척하면서 말하기도 하고, ‘아우~ 니 엄마가 왜 이러냐’ 혼자서 막 1인 몇 역을 하고 그러는데, 투쟁적인 삶이지만 너무 활력이 되고 재밌어요”

지금까진 이모 손에 자라다시피 한 희령이를 보며 중학생이 되면 직접 엄마 손으로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어왔다. 그걸 이젠 행동으로 옮기려는 것. “할 수 있는데도 안하는 게 많거든요. 내가 주로 야단쳐야 되기 때문에 무지무지 무서운 엄마로 그림자 양육을 해야돼요”라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숨길 수 없는 엄마의 아픔이 담겨있었다.

“처음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웃집 아이가 아니라 내 자식이잖아요. 내 자식이니까 ‘내가 잘못한 게 뭔가’ 죄책감속에서 나와의 싸움을 하느라고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애가 원망스러웠죠. ‘니가 왜 이렇게 태어나서 나를 이렇게 고생을 시키니’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아이에게 애정이 있으면서도 도피하고 외면하고 싶은 상황이 오히려 더 괴로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모든 인생엔 한 두 가지 아픔이 있기 마련. 그런데 또 한가지 아픔을 짐작해보면 결혼한지 5년 만의 이혼이 아닐까. ‘여성학자니 얼마나 피곤했겠어’ ‘여성학자들이 자식 생각도 안하고 갈라서는 건 이기적이야’ 페미니스트의 당연한 결과라는 듯 주위의 수군거림과 자신의 가치체계 사이의 일대 혼란은 ‘맨정신으로 견디기 어려웠던 분노와 공포의 시간’이었다는 말속에 짐짓 아픔이 묻어나는데, 그건 ‘아빠’없는 딸들에 대한 미안함까지 더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인터뷰 도중에 지나가는 누군가를 불렀다. “헤이!! 어제 저녁에 희록이랑 목욕하면서 헤이 얘기했는데, 이제 인턴 끝내고 돌아간다면서~ 자기가 휴학 안했으면 아빠랑 한 학기를 더 보내고, 정말 아빠한테 힘이 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고 서운해했어”

잘못 들은 걸까. 아빠라니 무슨 얘기냐고 물으니까 희록이가 따르는 인턴사원(교생)이라는데, 아빠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우리 희록이가 아빠라고 불러보질 못했잖아. 아빠라는 발음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애”

희령이 낳고 사람들이 “또 딸이야?” 그럴 때도 “둘째딸은 처음인데요!”라고 말했던 늘 당당했던 엄마, 하지만 딱히 표현하기 힘든 감정선은 100% 감춰지지 않았다. 늘 엄살부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도록 키워주신 어머니와 두 딸 희록과 희령, 그리고 휠체어에 의지해야하는 남자조카까지 김포 집엔 다섯식구가 모여산다.

어머니의 남다른 가르침 덕에 그녀는 결국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었고, 게다가 여권신장을 위해 당당히 외치는 사람이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긍정의 힘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평소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생각했던 것들을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자신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인데, 취미생활하고 돈 받는 것 같아서 가끔은 미안하다고까지 한다.

그렇지만 자기표현을 잘하는 게 가끔은 배려가 부족하고, 절제가 안돼서 단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경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가끔은 ‘아유~ 한심해, 그것도 절제 못하고…’ 그럴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말수가 적은 걸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가늠이 안되니까 주변사람들이 힘들어요. 특히 우리나라 남편들 말없는 건 너무 배려없음이야”

그래서 그녀는 수다콘서트라는 걸 한다. 오한숙희의 강의와 안혜경의 노래를 합쳐서 페미니스트를 대중적으로 전파하려는 것. 벌써 5년째다. ‘그래, 이제 남녀차별 알았어’ 그게 아니라 ‘내가 여자로 태어났든 남자로 태어났든 즐겁게 살아가는 것’ 바로 오한숙희가 바라는 교육의 변화는 그런 것이다.

“앞으로는 사회 분위기를 끌어올려서 ‘나도 한번 해봐야지’ ‘나도 할 수 있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살 수 있도록 부추기는 사람이 되보려고 해요”

세상을 향한 그녀의 추임새에 인생이 즐거워진다.


박진희 기자 jjini@iyeonhap.com
사진 안지영 기자 young@iyeonh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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